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온라인 전시회
NCCK, 백년의 기억
1990년 성역수호 및 비상시국 타개를 위한 전국성직자
기도회

1990년 5월 29일 오후 2시에 전주성광교회에서 “성역수호 및 비상시국 타개를 위한 전국성직자 기도회”가 7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1부 예배, 2부 사례보고 후에 전주성광교회에서 코아백화점까지 평화대행진이 진행되었다.


1990년 악법철폐와 양심수 석방 결의대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는 악법철폐와 양심수 석방 결의대회를 7월 15일부터 19일까지 전국적으로 진행하기로 하였다. 서울지역에서는 1990년 7월 15일 오후 3시에 향린교회에서 홍근수 목사를 강사로 모시고 진행하였다.


1991년 김귀정 열사 장례식

김귀정은 1988년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하였다. 동아리연합회 총무부장을 지낸 김귀정은 1991년 5월 ‘공안통치 민생파탄 노태우정권 퇴진을 위한 제3차 범국민대회’에 참가하여 시위 도중에 백골단의 토끼몰이식 진압에 의해 사망하였다. 1991년 6월 12일 장례식이 진행되었는데,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청년위원회가 ‘고 김귀정양 살인 진압 규탄 투쟁 및 장례행사’에 참여하였다.


1991년 김근태씨 고문경관 구속처벌 및 고문추방 결의대회

1991년 1월 24일에 전민련 인권위,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전국청년단체대표자협의회가 주최한 ‘김근태씨 고문경관 고문추방 및 결의대회’가 개최되었다. 김근태씨는 1985년 9월 민청련 사건으로 22일간 경기도 경찰국의 고문기술자인 이근안 경감에게 고문을 받았다.


1991년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목요예배

유신정권 치하에서 구속자와 탄압당하는 자들과 함께했던 목요기도회는 전두환ㆍ노태우 정권하에서도 계속되었다. 1991년 2월 28일에 ‘고난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목요예배’는 홍근수 목사 석방과 국보법 철폐를 주장하며 실시되었다. 


1991년 외국인등록법 국제심포지움

1991년 10월 7일부터 9일까지 한일 양국의 기독교인들은 제2회 외국인등록법(외등법)문제 국제 심포지움을 “선교과제로서의 재일한국인의 인권”을 주제로 하여 서울 한국교회 백주년기념관에서 개최하였다.


1992년 권호경 총무 북한 방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 권호경 목사는 1992년 1월 7일부터 13일까지 조선기독교도연맹 중앙위원회 서기장 고기준 목사의 초청으로 북한교회를 공식 방문하고 돌아왔다.


1992년 1월 15일 정신대대책협의회 수요정기시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은 매주 수요일 수요시위를 진행하였다. 1992년 일본 총리 미야자와 기이치 당시 일본 총리의 방한을 앞둔 1992년 1월 8일에 처음 시작되었다. 사진은 두 번째 수요시위(1992년 1월 15일) 장면이다.


1992년 강기훈 무죄석방촉구 및 국과수규탄대회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노태우 정권의 실정에 항의하는 분신이 잇따르는 가운데 1991년 5월 8일 당시 김기설 전국민족민주연합 사회부장의 분신자살 사건에 대해 검찰이 김기설의 친구였던 강기훈이 김기설의 유서를 대필하고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로 기소해 처벌한 인권침해 사건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는 1991년 강기훈의 무죄를 주장하며 강기훈의 인권과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였다. 결국 2007년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에서 본 사건을 다시 논의할 것을 권고했고 2015년 5월 대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강기훈의 무죄를 확정하였다. 사진은 1992년 4월 14일 명동성당 앞에서 열린 ‘강기훈 무죄석방 촉구 및 국과수 규탄대회’ 장면이다.


1992년 “악법철페 민주정부수립 연합예배”

1992년 악법철폐 기도주간을 맞이하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인권위원회와 서울지역 인권선교위원회 주최로 “악법철폐 민주정부수립 연합예배”가 향린교회에서 1992년 7월 19일 오후 2시 30분에 개최되었다. 이날 예배 후에 참석자들이 가두시위를 통해 의지를 밝혔다.


1992년 11월 17일, 윤금이씨 추모식 집회

1992년 경기도 동두천시 기기촌에서 주한미군인 케네스 마클 육군 이병이 민간인 여성 윤금이 씨를 잔혹하게 살해하였다. 이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92년 10월 28일 대책위원회를 조직하였고 11월 17일 기독교회관에서 8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추도식 및 규탄대회를 열었다. 이후 참석자들은 종로5가에서 파고다공원까지 한미행정협정 개정을 요구하는 평화시위를 이어나갔다.


1993년 사면조치로 석방된 후 NCCK를 방문한 문익환 목사

1993년 3월 6일, 정부는 공안사범 등 41,886명에 대한 특별사면조치를 단행하였다. 이 사면조치에 의해 석방된 문익환 목사가 1993년 3월 17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사무실을 방문하였다.


1993년 5월 11일 군의 민주개혁 촉구 기자회견

1989년 2월 18일 교회협 인권위 사무실에서 백담사 근무를 거부하고 양심선언한 임성호 일경(당시 원광대 2년 휴학)과 1992년 1월 15일 양심선언한 강태중 일경(외대 용인 2년 휴학) 외 6명의 양심선언 군인 전경 수배자들은 양심이 불법으로 매도되어 버리고, 비양심이 상식이 되어야 했던 암울한 시대에 군대에 경찰이 진정한 국민의 파수꾼이 되어야 함을 주장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이에 1993년 5월 11일 임성호 일경 외 7명이 기자회견을 통하여 ‘한국군의 5ㆍ6공 청산과 군의 민주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1993년 남북인간띠잇기대회

남북인간띠잇기대회는 1993년 8월 15일 오후 3시에 독립문에서 구파발과 통일로, 임진각을 거쳐 판문점까지 이르는 거리를 인간띠잇기를 통하여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을 모으기 위하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제안하여 진행한 행사이다. 이날 대회는 1989년 평양 봉수교회에서 남북이 합의한 ‘체제와 제도가 다르다고 남북이 서로 원수로 보는 일이 없이 마음과 지혜를 모아 조국의 통일을 이룰 수 있도록 해달라’는 내용의 남북공동기도문 낭독과 통일 만세삼창으로 막을 내렸다.


1994년 9월 30일 창립 70주년 기념예배 및 토론회

1994년 9월 30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70주년을 맞이하여 250명이 참가한 가운데 기념예배를 드렸으며 곧바로 150명이 참가한 가운데 토론회를 진행하였다. 당시 김용복 목사(한일신학대학 학장), 이상철 목사(카나다연합교회 증경총회장), 김상근 목사(기장선교교육원 원장)가 발제하였다.


1994년 11월 29일 사랑의장애인체험대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1989년 장애인운동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리고 1995년 희년(기쁨의 해)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장애인에 대한 무관심을 회개하고 정부 당국자들에게 실질적 장애인복지 정책을 입안 시행해 줄 것을 요청하기 위한 행사로 ‘사랑의장애인체험대회’를 준비하였다. 이날 행사를 통한 모금은 이후에 장애인자녀들에게 장학금으로 지급하였다.


1995년 6월 7일 한국통신노동조합투쟁

1995년 6월 7일 오후 2시에 명동성당과 조계사에서 연행된 한국통신 노조간부들과 현 한국통신 사태에 대한 문제해결을 위해 전국노조지부장대회를 기독교회관에서 개최하려고 하였으나 150여명의 한국통신 관리적 간부들과 전경 200여명이 기독교회관 앞을 가로막고 노조지부장들의 출입을 막았다.


1995년 8월 콘라드 라이저 방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의 초청으로 WCC(세계교회협의회) 총무 콘라드 라이저 박사가 1995년 8월 9일 내한하여 공식 일정을 마치고 8월 16일 출국하였다. 


1995년 10월 31일, 5ㆍ18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특별기도회

1995년 5ㆍ18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 국회에서 제정되어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운동이 각계 각층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이에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5ㆍ18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특별기도회’를 회원교단 목회자, 기독교선교단체, 신학생 등 2,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0월 31일 오후 1시에 한국기독교연합회관 3층 대강당에서 개최하였다. 예배 후에 기독교연합회관에서부터 탑골공원까지 평화의 행진을 하였으며, 탑골공원에서 보고대회를 가졌다. 


1997년, 북한동포돕기운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는 북한 동포들이 심각한 굶주림으로 인해 극도의 고통을 받고 있는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고 본 협의회 소속 교단들과 함께 ‘북한동포돕기비상대책본부’를 조직하여 ‘평화의 쌀 보내기 운동’을 진행하였다. 이를 위해 1997년 5월 19일 기독교회관 앞에서 거리모금캠페인을 진행하였다.


1997년 5월 11일 장애인 자녀 장학금 수여

1997년 5월 11일 한국마사회강당에서 장애인자녀장학금 수여식이 진행되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장애인선교위원회는 1994년부터 매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장애인 자녀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해왔다.


1997년 6월 4일, 외국인노동자보호법제정촉구 농성

1997년 6월 4일, 한국외국인노동자대책협의회 주관으로 ‘외국인노동자보호법제정촉구’ 농성이 진행되었다. 


1997년, ‘북녘어린이 살리기 어깨동무 통일대행진’

1997년 7월 19일, KNCC 북한동포돕기비상대책본부는 한겨레신문사, 보건의료단체와 공동으로 ‘북녘어린이 살리기 어깨동무 통일대행진’ 행사를 치루었다. 각 교단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교사, 일반 참가 어린이와 학부모, 각계 인사 등 3천여 명이 참석해 북녘 어린이돕기의 뜻을 되새겼다.


1998년 6월 21일, ‘실직자에게 희망을, 동포에게 나눔을’

1998년 ‘새로운 천년을 향한 평화대행진’ 행사를 ‘실직자에게 희망을! 동포에게 나눔을!’이란 주제로 6개 종단과 함께 장충단 공원에서 남산 팔각정까지 3킬로미터를 한마음으로 행진하였으며, 남산팔각정에서 실직자와 북한동포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선포와 결단식을 하였다.


1998년 9월 NCCK 3차 방북 칠골교회

한국교회 방북 대표단 7인(김동완, 이성덕, 이병돈, 박기수, 김희원, 백종선, 이동춘)은 1998년 9월 22일 오전 11시 30분 고려민항편으로 조선기독교도연맹 강영섭 위원장의 초청으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이번 방문단은 지난 5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방문단과 조선기독교도연맹 사이의 합의에 의해 ‘범기독교적’으로 구성된 것이다. 본래 8명의 방북단이 구성되었으나, 예장 합동교단 대표로 참석키로 했던 김윤배 목사는 개인사정으로 동행하지 못했다. 대표단은 9월 29일 평양을 출발하여 귀국하였다.


1999년 동강살리기운동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환경위원회는 여성위원회와 공동으로 환경주일을 맞아 6월 2일 강원도 영월의 영월대교 둔치에서 ‘동강 살리기를 기원하는 환경주일 연합예배’를 드리고 창조질서와 생태계 보전을 촉구했다. 이날 예배에는 교회협 관계자들과 환경위원, 환경관련 실무자 등 300여 명이 참석하여 예배드린 후 동강 주변에서 댐건설 반대행진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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